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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M 이야기

역사 및 현황
역사 제2기 타문화선교 (활성화시작기)
21/07/22 16:01 | KP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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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M의 변화와 발전

대한예수교 고신총회 창립 : 1952.09.11

 

대구서문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제 37회 총회는 1938년 제 27회 총회시에 신사참배를 가결한 일에 대한 교단적 정화운동에 앞장서고 있던 고려신학교와 경남(법통)노회에 대해 총회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재언명과 함께 총대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총회와 결별 할 수밖에 없었다.(1952.04.29.) 그 해 9월 11일 분리된 경남(법통)노회를 중심으로 진주 성남교회당에서 새로운 고려측<총노회>(총노회장 이약신, 부회장 한상동)가 조직되었다.

그 후 1956년 09월 20일 열린 총노회에서 <총회>로의 개편을 결정하였고, 총노회를 계속키로 하여 <제6회 총회>가 되었다.

 

제 2기 타문화선교

활성화시작기(1980-1990)

 

KPM은 1980년대에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그리고 남미와 남유럽으로까지 선교사역을 확대하였고, 선교사 숫자는 21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전담 총무제의 시행과 고신선교훈련원(KMTI, 1988)의 개원으로 교단선교운동에 커다란 진보가 있었으며, 선교활성화에 시동이 걸린 시기였다.

 

 

1980년대 KPM의 주요 역사

● 상설 [ 선교국 ] 설치, 1980

- 1980년 9월 총회에서는 선교부 산하에 <선교국>을 설치하여 사무실을 부산 중구 동광동 2가 11번지 남교회당내에 두었다. / 국장 한명동 목사, 총무 김사엽 장로

- 해외선교업무규정 제정 (1980.12)

- 1984년 2월 1일자로 선교부 사무실을 삼일교회로 이전하였고, 전담간사 1명과 사무원 1명을 두었다.

- 1988년 3월 9일 선교국 사무실을 부산시 진구 초읍동 277-7 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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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개발연구원], 1982 / 원장 전호진 박사

- 교단선교 홍보지를 발행하기 시작하여 <선교회보>(1983), <해외선교회보>(1984), <해외선교>(1988) 로 그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선교본부 총무제 실시, 1982

<역대 총무/본부장>

- 초대총무 (1982-1986) : 김사엽 장로

- 제2대 (1987-1990) : 김영진 선교사 (첫 선교사 총무)

- 제3대 (1990-1994) : 곽삼찬 목사 (목회자 겸임총무)

- 제4대 (1994-1999) : 이병길 목사 (선교사 출신 총무)

- 제5대 (2000-2009) : 이헌철 선교사

->2007년 “본부장”으로 명칭 변경

- 제6대 (2009-2012) : 김한중 선교사

- 제7대 (2012-2015) : 이정건 선교사

- 제8대 (2015-2018) : 김종국 선교사

- 제9대 (2018-2021) : 박영기 선교사

 

● 선교훈련원(KMTI) 시작, 1988

김영진 총무는 선교사들의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고신선교훈련원>을 시작하였는데, 1988년 8월에 3주과정의 제1기 고신선교훈련이 부산 사직동교회 교육관에서 개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