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대만에서 역사하신 하나님(김영진 선교사 회고록)
작성자
kpm
작성일
2026-04-28 16:00
조회
39
고신총회의 선교 역사에 있어 1957년 9월 20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중요한 날입니다.
왜냐하면 교단 제7회 총회가 열린 부산 남교회당에서 드려진 선교사 파송예배는, 고신교단이 파송한 세계선교의 첫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제4회 총노회에서 선교부를 설치하며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어온 고신선교부는, 1956년 총회로 승격된 이후
그 결실로 제2영도교회를 시무하던 김영진 목사를 대만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는 OPC(Orthodox Presbyterian Church)미국 정통 장로교 소속의 한부선 선교사의 조언 아래 공산화로 막힌 중국 대륙을 대신하여
대만을 선교 거점으로 삼고자 한 전략적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1957년 열린 제7회 총회에서는 약 90여 명의 총대가 참석한 가운데 파송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박손혁 목사의 기도, 남영환 목사의 ‘보내시는 성령님’이라는 말씀 선포,
한상동 목사의 권면과 기념품 증정, 통성기도와 황철도 목사의 축도로 이어진
이 예배는 고신교회 전체가 한 마음으로 선교의 사명을 확인하는 역사적 자리였습니다.
파송 이후 김영진(39세) 임옥희(39세) 선교사 부부는 1958년 5월 13일, 어린 딸(난나 6세)과 함께 미국상선 존비워터호를 타고 대만에 3일만에 도착하여
신죽지방을 중심으로 33년간 헌신적인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객가인으로 구성된 신죽교회, 대만인으로 구성된 죽동교회, 부족으로 이루어진
산지인들위한 화원교회 등 12개의 교회를 개척하였고, 미정통장로교 선교부와 협력하여 ‘개혁종 신학교’를 설립함으로써 현지 지도자 양성에도 힘을 썼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1971년 3월 1일 대만 기독교 '개혁종 장로회 조직'에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선교 사역의 주도권을 한 세대 안에 현지 지도자들에게 이양한 사례로, 이는 세계 선교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모범적인 모델로 평가됩니다.
김영진 선교사는 이후 총회 선교부의 첫 전담 총무로 섬기며 선교 행정의 기틀을 세웠고,
1988년 고신선교훈련원(KMTI)을 설립하여 다음 세대 선교사 양성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990년 제40회 총회를 끝으로 32년간의 공식 사역을 마무리한 그는, 고신교회 최초의 ‘원로 선교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과 사역은 고신교회 선교의 뿌리이자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오늘날에도 깊은 선교적 사명에 대한 도전과 통찰을 제공합니다.
왜냐하면 교단 제7회 총회가 열린 부산 남교회당에서 드려진 선교사 파송예배는, 고신교단이 파송한 세계선교의 첫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제4회 총노회에서 선교부를 설치하며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어온 고신선교부는, 1956년 총회로 승격된 이후
그 결실로 제2영도교회를 시무하던 김영진 목사를 대만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는 OPC(Orthodox Presbyterian Church)미국 정통 장로교 소속의 한부선 선교사의 조언 아래 공산화로 막힌 중국 대륙을 대신하여
대만을 선교 거점으로 삼고자 한 전략적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1957년 열린 제7회 총회에서는 약 90여 명의 총대가 참석한 가운데 파송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박손혁 목사의 기도, 남영환 목사의 ‘보내시는 성령님’이라는 말씀 선포,
한상동 목사의 권면과 기념품 증정, 통성기도와 황철도 목사의 축도로 이어진
이 예배는 고신교회 전체가 한 마음으로 선교의 사명을 확인하는 역사적 자리였습니다.
파송 이후 김영진(39세) 임옥희(39세) 선교사 부부는 1958년 5월 13일, 어린 딸(난나 6세)과 함께 미국상선 존비워터호를 타고 대만에 3일만에 도착하여
신죽지방을 중심으로 33년간 헌신적인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객가인으로 구성된 신죽교회, 대만인으로 구성된 죽동교회, 부족으로 이루어진
산지인들위한 화원교회 등 12개의 교회를 개척하였고, 미정통장로교 선교부와 협력하여 ‘개혁종 신학교’를 설립함으로써 현지 지도자 양성에도 힘을 썼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1971년 3월 1일 대만 기독교 '개혁종 장로회 조직'에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선교 사역의 주도권을 한 세대 안에 현지 지도자들에게 이양한 사례로, 이는 세계 선교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모범적인 모델로 평가됩니다.
김영진 선교사는 이후 총회 선교부의 첫 전담 총무로 섬기며 선교 행정의 기틀을 세웠고,
1988년 고신선교훈련원(KMTI)을 설립하여 다음 세대 선교사 양성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990년 제40회 총회를 끝으로 32년간의 공식 사역을 마무리한 그는, 고신교회 최초의 ‘원로 선교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과 사역은 고신교회 선교의 뿌리이자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오늘날에도 깊은 선교적 사명에 대한 도전과 통찰을 제공합니다.